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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강원도

탄광문화촌, 강원도 영월 마차리에 위치한 탄광촌 생활관 재현 공간

by 로사!! 2020. 2. 21.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마차리에는 국내최초의 탄광촌이었던 곳이다. 60~70년대 우리나라에서 탄광업이 최고로 번성할 무렵 마차리는 제2의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당시의 유행과 자본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규모가 여느 대도시 못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생활관 안으로 들어가서 당시의 모습을 보면 현재 우리의 삶과 비교해서는 상상도 안될 정도로 낙후되고 어려운 삶을 살았던 시대이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난 직후라 먹고 살것이 없고 산업도 발달되지 않은 터라 탄광업이 유일한 돌파구이자 시작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약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 해 있어 당일 코스로 가볍게 다녀올 만한 거리이다. 주변에는 산과 산책로가 있어 주말이나 쉬는 날 한번쯤 들러보기 좋은 곳이다. 현재는 볼 수 없는 생활상을 보면서 나이드신분들은 향수에 젖고 어린 아이들은 우리의 옛 모습에 대한 상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탄광문화촌에는 생활관과 갱도체험관이 있어 입장료를 통합해서 받고 있다. 어른이 2천원으로 입장료가 비싸지않아서 더 무담없이 들러보기에도 좋다. 운영시간은 계절에 따라 오후 5시나 6시까지 운영되므로 방문전 확인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그당시는 탄광촌에서는 배급표를 받아서 일한 만큼 생필품을 지급 받아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이런 배급소의 모습도 현대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일이지만 모든것이 아날로그였던 당시의 모습이다.

우리는 가끔 드라마에서 이런 모습을 보곤한다. 광부들이 일 끝나고 막걸리 한잔씩하던 주막집.

당시 막걸리 심부름을 하던 어린아이를 재현해 놓았다. 해설사님의 해설에 의하면 막걸리 심부름을 하던 아이들이 집에 들고오는 길에 홀짝홀짝 한모금씩 먹고오다가 취하는 경우도 있어다고 한다 ㅋㅋ

뻥튀기 아저씨의 모습, 내가 어릴적만 해도 뻥튀기 아저씨가 주기적으로 동네에 오셨다. 뻥튀기가 다 만들어져서 마무리 할때 폭발하는 소리에 사람들이 놀랄까봐 뻥이요~하고 소리치던 관경이 인장적이어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금은 거의 볼수 없게 되었고 아마 아파트 단지에서 뻥튀기 폭발하는 소리를 냈다가는 아마 바로 쫒겨날 듯.

당연히 그당시에도 빈부격차는 있었을 것이고 마차리에서도 그랬었나보다. 양반 사택이라고 써있는데 그당시에도 양반의 개념이 살아있었나보다.

공동변소, 지금도 공원에 가면 공중화장실이 있지만 열악하던 그당시에는 일반 가정집에 화장실이 없던 집도 많았다. 그래서 공동변소가 마을마다 몇개씩 있었는데 밤이면 많이 무서웠을듯. 나무틈새로 몰래 훔쳐보는 동네 짖꿋은 꼬맹이들도 있는데 지금 이랬다가는 범죄행위로 잡혀간다.

사원의 사택,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살던 집이다. 추억의 석유곤로의 모습도 보인다. 그때는 저것을 난로가 아니라 곤로라고 했었는데 이름의 차이가 뭔지는 모르겠다. 석유 심지를 돌려 올려서 성냥으로 불을 붙여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리얼하게 마네킹까지 전시해 놓았다. 방과 주방이 연결되어있고 전체적으로 집안이 모두 작다. 그래도 그때 집에 TV가 있을 정도면 잘 사는 집이었을 텐데 마차리가 유행과 자본이 몰리고 대도시 못지 않았다는데 사실이었나보다 광부라는 직업은 정말 상상히 안될 정도로 어려운 직업이지만 먹고살 것이 없던 당시로서는 돈이 되는 직업이었던가 보다.

광산는 밤낮이 없이 작업을 할수 있는 공간이어서 광부들이 3교대를 하며 24시간 풀가동이 되던곳이었다. 그래서 갑 을 병팀으로 나누어 교대근무를 했고 그의 가족들도 모두 그 패턴에 맞춰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추억의 고무신도 전시가 되어 신어볼수 있었다. 검정고무신도 당시에는 많이 신었을텐데 하얀고무신이 전시되어있었다.

학교 교실의 모습, 교실의 모습은 당시 다른 도시들의 학교와 별반 다르지는 않으것 같다. 난로와 풍금의 모습이 정겹게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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